이로나이 거리와 교차하는 곳에서 니치긴 거리를 바라보면 근대 도시의 역사가 보입니다. 반경 약 500m 범위 내에 오타루를 북쪽의 경제 중심지로 만든 유명 은행들의 건물군이 있으며, 일본 근대 건축의 정수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당시 있던 25개 은행 중 10개의 은행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그중 일부는 20세기 초 일본의 일류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습니다.
【새로운 금융 프런티어】
오타루 최초의 금융기관은 대부업과 전당포였으며, 19세기 후반의 ‘청어 골드러시’ 때 유입된 어부와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을 대응했습니다. 1897년까지 오타루시의 연간 청어 어획량은 9만 톤 가까이 되었으며, 시의 인구는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 초 약 2,000명에서 1920년대에는 1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급성장으로 인해 정부가 통제하는 대규모 은행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미쓰이 은행은 홋카이도에 처음 진출한 은행으로 1876년에 하코다테에, 1880년에는 오타루에 지점을 개설했습니다. 미쓰이 은행은 1882년에 일본은행이 설립될 때까지 홋카이도 개발을 위한 재정 자금을 취급했습니다. 초기에 생긴 이 은행들은 다른 금융업자보다 더 낮은 금리로 융자하고, 지폐와 동등한 가치를 가진 수표를 발행했으며, 국제 무역업자에게 외화 환전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오타루의 신흥 경제에 기여했습니다.
【일본 근대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군】
은행의 수는 1887년 3곳에서 1897년에는 10곳, 1920년대 중반에는 25곳으로 급속히 증가하여 오타루는 홋카이도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은행 건축은 1893년에 사카이마치 거리에 완공된 다이햐쿠주산 국립은행 오타루 지점입니다. 이 건물은 일본식과 서양식을 융합한 창고형 건축 양식으로 이루어진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은행입니다.
20세기 초, 일본의 은행은 부, 성실성, 안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전적인 유럽 건축 양식을 채용했습니다. 메이지 정부가 해외의 통화와 금융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일본의 주요 건축가들도 영감을 찾아 유럽과 미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20세기 초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 4명은 현재의 도쿄 대학에서 영국인 건축가 조시아 콘도르(Josiah Conder, 1852년~1920년)에게 사사했습니다. 그들은 니치긴 거리에 일본은행 오타루 지점(1912년), 이로나이 거리에 미쓰이 은행 오타루 지점(1927년)을 연이어 건축했습니다.
초기의 은행 건축과는 대조적으로 1920년대에 지어진 홋카이도 다이쇼쿠 은행(1923년), 미쓰비시 은행(1924년), 다이이치 은행(1924년)의 오타루 지점 등은 심플한 기둥과 최소한의 장식을 갖춘 평탄하고 매끄러운 파사드가 특징입니다. 이것들은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공공 건축과 시설용으로 사용되던 절제된 신고전주의 건축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역사적인 거리를 살린 재정 악화】
오타루의 은행 건축물 중 대부분은 수많은 환경적, 역사적 요인으로 인해 살아남았습니다. 그 중 한 요인으로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오타루에서는 지진이 비교적 적었던 점,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공습으로 인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도시의 경제력 쇠퇴도 건축물의 보존에 일조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일본의 에너지 주류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면서 오타루는 석탄 출하항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그 때문에 1960년대에 오타루에서 많은 금융기관과 상사가 철수하면서 웅장한 건물들은 텅 비게 되었습니다. 경제가 계속 번영했다면 더 현대적인 양식의 새로운 건물로 재건축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타루의 재정 악화가 이로나이 지구의 은행을 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