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오타루 운하를 따라 만들어진 보도는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으며, 가스등이 늘어서 있습니다. 20세기 초 무역항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어진 창고에는 현재 레스토랑과 상점, 박물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풍광이 아름다운 오타루의 한 구역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지역 주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운하는 1914년에 시작된 9년에 걸친 사업의 성과입니다. 사업의 목적은 만에 정박하는 화물선과 해안을 따라 늘어선 창고 사이에서 상품의 운반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해 운하를 매립하는 계획이 제안되자, 오타루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사회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번영하는 변경의 항구】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에 이 항구 도시는 무역과 활황이던 청어잡이, 그리고 많은 이주자가 어우러져 급성장했습니다. 1880년대 말 오타루 근해에서 청어의 연간 어획량은 약 9만 톤에 달했습니다. 항구는 오사카에서 호쿠리쿠, 도호쿠 지방과 북쪽의 연안 도시에서 물품을 실어 온 후 청어로 만든 비료를 싣고 남쪽으로 돌아가는 상선들로 붐볐습니다.
정부가 토지 양도와 자금 원조를 제공하는 제도에 따라 혼슈와 일본 국내의 다른 지방에서 온 많은 정착민이 오타루를 거쳐 갔습니다. 내륙의 호로나이 탄광에서 오타루 항구까지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1880년에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었고, 일본 전역으로 출하된 석탄이 일본의 공업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운하 건설】
20세기 초까지 오타루는 북일본 최대의 상업항이 되어 항구가 혼잡해지자 선박에서 해안까지 화물과 승객을 운반하는 바지선을 정박시킬 공간이 부족해졌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14년부터 1923년까지 매립 계획이 실시되었고, 해안과 평행하게 매립된 인공섬 사이에 폭 40m의 수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약 1.3km에 달하는 수로를 따라 있는 인공섬에는 새로운 창고가 지어졌으며, 본토와는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되었습니다. 수로가 생기면서 창고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었고, 바지선을 정박시킬 공간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오타루 운하로 알려지게 된 수로입니다.
【영고성쇠】
목조 범선은 점차 거대한 화물선으로 바뀌었고, 1937년에 새로운 부두가 완공되어 바지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증기선이 착안하여 짐을 내릴 수 있게 되어 운하의 역할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의 에너지 주류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었고, 홋카이도의 주요 항구로서 오타루의 지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운하는 사용되지 않게 된 바지선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오타루 재생의 상징】
1966년에 오타루시가 6차선 도로를 만들어 도시를 근대화하기 위해 운하를 매립하고 창고군을 철거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1973년에 시민 단체가 운하와 역사적인 도시 경관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시민 운동은 당시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것이었으며, 이 노력은 일본 전역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에 보존 운동 단체는 오타루시와 타협점을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운하의 일부는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해 매립하고, 다른 부분은 기존의 도로 폭을 확장하는 데 그치게 되었습니다. 운하를 따라서는 포장된 보도와 가스등이 설치되었고, 창고군은 레스토랑과 상점, 박물관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수되었습니다. 오타루 운하의 북쪽은 옛 모습을 짙게 간직하고 있으며, 과거 도시의 부를 쌓는 데 일조했던 바지선을 대신해 유람선이 늘어서 있습니다. 현재는 ‘오타루 운하 크루즈’도 운영하고 있으며, 나이트 크루즈에서는 환상적인 야경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