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데미야 석탄 부두 근처의 콘크리트 방파제는 이시카리 만을 가로질러 1,289m에 걸쳐 뻗어 있습니다. 오타루는 홋카이도 해상 교통의 주요 거점이었습니다. 오타루는 수심이 깊은 항구로, 그중 일부는 북쪽의 곶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많은 선박이 항구로 오게 되면서 겨울의 폭풍과 거친 파도로 인해 배와 화물이 파손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1897년에 항구의 북쪽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외양 방파제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파도를 제어하다】
토목 기사인 히로이 이사미(1862년~1928년)는 방벽의 가장 적합한 고도와 각도를 계산하기 위해 파압 공식을 고안하고 이를 이용하여 무게 14~24톤의 블록으로 된 방파제를 설계했습니다. 그는 파도에 대해 특정한 각도로 블록을 쌓아 올리면 거친 파도의 충격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방파제는 수면 위에서는 폭 7.3m의 폭이 좁은 콘크리트 부두로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바다 쪽에 계단 모양으로 쌓인 블록에 의해 파도가 부서집니다.
19세기 일본에서의 방파제는 방어적인 성벽의 건축과 마찬가지로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큰 돌을 쌓아 만들었습니다. 히로이는 콘크리트를 사용함으로써 거친 파도에 견딜 수 있는 인터로킹 블록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내의 콘크리트 생산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때, 나가사키현 사세보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의 방파제에서 몇 년 전부터 사용되던 콘크리트에 이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히로이는 콘크리트 혼합물에 화산재를 첨가하면 내구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약 60,000종의 혼합 샘플을 만들어 검증했습니다.
【현대 토목 공학의 창시자】
히로이는 도사번(현재의 고치현)의 무사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1867년에 도쿠가와 막부(당시 정권)가 쇠퇴하고 무사 계급이 폐지되자 히로이 일족은 지위와 수입을 잃었습니다. 히로이는 10살 때 공부를 위해 도쿄에 있는 숙부의 집으로 옮겨간 후 홋카이도로 이주했으며, 15살 때 삿포로 농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1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시피강 개수 공사에 참여했으며, 이후 철도교를 설계했습니다.
히로이는 미국에서 4년, 독일에서 2년을 보낸 후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히로이는 삿포로 농학교에서 2년 동안 교수로 일했으며, 이후 도쿄 제국 대학(현재의 도쿄 대학)의 교수로 취임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파나마 운하 건설 등 전 세계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20년 동안의 임기 중 그는 대규모 다리에서 댐, 수력 발전까지 일본 전역의 건설 프로젝트에 고문으로서 노력했습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오타루 항구 북방파제는 거친 파도로부터 항구를 보호하고 있으며, 히로이의 파압 공식은 1980년대까지 전 세계의 항구 설계에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