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km의 산책로는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의 일부 구간을 더듬어 가며 이로나이 은행가를 지나 구 데미야선 시설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선로와 일부 건널목 차단기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산책로를 거닐면 주요 무역 거점으로 발전한 당시의 도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석탄과 기타 생활용품을 항구로 운반하던 열차가 민가의 현관 앞에서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을 지나던 곳도 있었습니다.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
데미야선은 호로나이 철도가 처음으로 개통된 구간으로 1882년에는 호로나이 철도 전체 노선이 개통되었으며, 호로나이(현재의 미카사시)의 새로운 탄광과 오타루 항구의 데미야에 있는 석탄 적재 전용 부두를 연결했습니다. 증기 기관차가 호로나이 철도를 통해 혼슈로 출하하는 석탄을 운반하고 화물을 싣고 승객을 태워 오타루와 홋카이도 중부의 목적지 사이를 달렸습니다.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에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를 만들고, 홋카이도를 북쪽의 새로운 세상으로 개척하기 위해 미국의 철도 기술자인 조지프 유리 크로포드(Joseph Ury Crawford, 1842년~1924년)를 고용했습니다. 그는 남북 전쟁(1861년~1865년) 후 미국의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했으며 홋카이도와 비슷한 혹독한 겨울 기상 조건에 정통했습니다.
【현지 조건에 맞춘 건설】
홋카이도의 철도는 혼슈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은 폭의 좁은 레일(1,067mm)을 사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던 표준 레일(1,435mm)보다 더 저렴하고 깔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형 경량 기관차(16.5톤)와 철도 차량이 이 선로용으로 특별히 주문되어 만들어졌습니다. 홋카이도 최초의 기관차 2대는 12세기에 활약한 전설적인 일본 무사의 이름을 따서 ‘요시쓰네호’, ‘벤케이호’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데미야선이 1880년에 공식 개통되기 한 달 전에 크로포드와 동료 기술자들은 ‘벤케이호’의 시운전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오타루 시민들이 증기 기관차를 처음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적혀 있습니다.
【우선순위의 변화】
호로나이 철도는 개통 초기에는 데미야~삿포로 사이를 하루에 1번 왕복 운행했습니다. 승객은 편도 1엔의 운임을 지불했고, 소요 시간은 편도 3시간이었습니다. 1906년까지 오타루에서 출하된 석탄의 적재량이 많아지면서 수익성이 높은 석탄 수송을 우선시하기 위해 여객 영업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주민 운동으로 1912년에 여객 열차가 재개되었습니다. 데미야역은 화물 수송 전용이 되었으며, 승객 전용의 새로운 역이 호로나이선의 수백 미터 남쪽에 만들어졌습니다.
【노선의 종언】
호로나이 철도 데미야선은 1985년에 완전히 폐선될 때까지 홋카이도 내륙부와 오타루 항구 사이를 연결하는 빼놓을 수 없는 노선이었습니다. 홋카이도의 철도망이 발달하면서 삿포로와 하코다테에서 오는 여객 차량은 더 내륙에 있는 신오타루역을 지나게 되었으며, 일부 여객 운행과 화물 및 석탄의 수송은 계속해서 데미야선을 사용했습니다. 데미야선의 여객 운행은 결국 1962년에 폐지되었지만, 화물 수송을 위한 운행은 198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여객용 역 플랫폼은 더 이상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이로나이 은행가 근처의 선로 옆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 항구 도시로서 번영했던 당시 오타루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데미야선이 큰 존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